요트 선착장에서 잠수해 배 밑바닥의 따개비를 제거하는 작업에 투입됐다가 사망한 여수해양과학고 현장실습생 고(故) 홍정운(17)군의 친구들이 특성화고 학생들을 위한 안전한 현장실습 환경을 마련할 것을 정부에 촉구하고 나섰다.
민주노총 전국특성화고노동조합(노조), 특성화고 학생 및 졸업생, 홍군의 학교 친구들 등 90여명은 7일 오후 서울시청 앞에 모여 홍군의 사망을 추모하며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행진을 시작했다. 오후 2시10분께 시작된 이들의 행진은 약 1시간10분 뒤인 오후 3시20분께 청와대 앞에서 마무리됐다.
이날 노조 관계자들은 행진에 앞서 분주하게 돌아다니면서 참가자들의 체온을 확인하고 명단을 작성했다. 행진에는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참여했다.
행진 시작 바로 전 참가자들 앞에 선 윤택근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은 “조국을 위해 자신의 꿈과 희망을 가졌던 청년이 왜 죽어야 했느냐”며 “한 해에 1300여명의 노동자들이 죽어나간다. 이 청춘의 죽음에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그저 방관하는 것이 과연 국가라고 할 수 있느냐”고 했다.
윤 직무대행은 “홍군의 친구들도 노동자가 일한 만큼 대가를 받고 비정규직이 없는 나라를 만들어보자는 요구를 하고 있다”며 “문재인 정부는 각성하고 헬조선이라고 하는 이 나라를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오후 2시10분께 행진이 시작되자 참가자들은 “현장실습생도 노동자다”, “고용노동부가 현장실습 기업체 관리 감독하라”, “학교에서 노동교육울 제도화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정운아 사랑해’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부착된 트럭이 제일 앞에서 행진을 이끌었고, 관련 문구들이 적힌 현수막을 든 99명이 뒤를 따랐다.
홍군의 친구 및 특성화고 학생들은 다소 긴장하거나 침울한 표정으로 2~3명이서 현수막을 하나씩 들고 행진에 동참했고, 경찰은 이들 행렬을 옆에서 따라가며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했다. 이날 행진에 동참한 참가자 대다수는 홍군과 비슷한 나이 또래인 10대들이었다.
광화문 앞에 도착한 이들은 잠시 행진을 멈춘 뒤 앞서 외쳤던 구호들을 반복했고, 이후 학생들의 발언이 이어졌다.
홍군과 같은 학교에 다닌 친구 A군은 “활발한 성격의 친구는 아니었지만 정운이를 좋아해주던 친구들이 참 많았다”며 “정운이는 평소 4차원적인 행동으로 저희를 즐겁게 해줬고 그 누구 하나 싫어하지 않았던 착한 친구였다”고 설명했다.
A군은 “이런 정운이가 우리의 곁을 떠났다는 것이 아직 믿기지 않고 힘들기만 하다”며 “왜 정운이가 이런 사고의 희생양이 됐어야 했느냐. 저희는 정운이를, 정운이와의 추억을 평생 잊지 않고 살아갈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저희가 바라는 것은 현장실습 폐지가 아니라 안전한 현장실습장을 만들어 다시는 이런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며 “현장실습을 폐지하려고 하지 말고 우리가 꿈을 이룰 수 있게, 꿈을 펼칠 수 있게 환경을 개선해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광화문 앞에서 다시 행진을 시작한 이들은 오후 3시께 마지막 행선지인 청와대 앞에 도착했다. 참가자들은 약 20분 동안 “부당한 지시를 거부할 권리를 달라” 등과 같은 구호를 외치는 등 퍼포먼스를 이어간 뒤 일정을 마무리했다.
생전 여수해양과학고에 다녔던 홍군은 지난달 6일 요트 선착장에 잠수해 배 밑바닥의 따개비를 제거하는 작업을 하던 중 숨졌다. 당시 홍군은 스킨스쿠버나 잠수기능사 등 자격증이 없었음에도 현장 업무에 투입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었다.
홍군에게 관련 작업을 지시한 요트 업체 대표 황모(48)씨는 만 18세 미만인 피해자이자 무자격자인 홍군에게 금지된 잠수 작업을 시킨 혐의 등으로 수사를 받고 최근 검찰에 송치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