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서구 공무직 직원들이 본인과 공무원·구 의원 등의 불법 주정차 단속 자료를 임의로 삭제, 과태료 면제 특혜를 누릴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전산시스템 상 구조적 맹점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공무직 직원들이 직무엔 없는 전산시스템상 단속 자료 삭제 권한을 남용하는 사이, 이들을 감독해야 할 주무부서 공무원들은 수년간 허술한 전산시스템 관리 실태조차 모르고 있었다.
15일 광주 서구 등에 따르면, 서구 교통지도과 소속 공무직 직원 6명이 지난 재작년부터 2년여 간 주정차 위반이 적발된 본인·가족·지인 소유의 차량의 단속 자료를 임의 삭제한 것으로 확인됐다.
단속 자료 삭제를 통해 과태료 처분을 면한 차량은 228대다. 다만 이 중 70여 대는 중복 단속·번호판 인식 오류 등이 확인돼 삭제한 것으로 보인다고 서구는 설명했다.
그러나 이들은 업무 분장 상, 단속 자료를 삭제해서는 안 된다. 직무에 벗어나는 행위를 한 셈이다.
문제가 된 공무직 직원들은 서구 지역 고정형·이동형 단속 카메라를 통해 불법 주정차 위반 차량을 가려내는 업무만을 할 수 있다.
규정대로라면 중복 단속·차량번호판 인식 오류 등 단속 자료 검수 단계에서 삭제 권한은 담당 공무원 1명에게만 있다.
그러나 서구가 사용 중인 주정차 단속 관리 전산시스템 ‘트래픽’ 상에는 공무직 직원 9명에게도 삭제 권한이 부여돼 있었다. 이 같은 허점을 악용해 공무직 직원들은 자신의 계정으로 시스템에 접속, 부당 행위를 서슴치 않았다.
현재 서구는 국토교통부가 각 지자체에 보급한 주정차 단속관리전산시스템 ‘CS’가 아닌 ‘트래픽’을 사용하고 있다. ‘CS’에는 단속 자료 삭제 권한 부여 범위가 공무원에 제한된다.
반면 ‘트래픽’은 기본 설정값 자체가 해당 프로그램 접속 계정이 있는 사람에게 모두 단속 자료 삭제 권한이 활성화돼 있다.
‘트래픽’은 ‘CS’와 달리 전산 자료 입력 과정 상 편의성이 높아, 전국 지자체 상당수가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전산시스템을 운용하는 다른 지자체에서도 비슷한 부당 행위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더 큰 문제는 담당공무원·부서장 등이 전산시스템상 삭제 권한이 공무직 직원들에까지 무분별하게 부여된 사실조차 수년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전산시스템상 허점도, 단속 자료 삭제 권한을 수년 간 남용됐다는 사실조차 담당 공무원들은 몰랐다고 주장한다. 교통지도과 공무원들이 공무직 직원들을 관리·감독해야 할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인력 구조 상, 공무직 직원들에 대한 관리·감독이 소홀할 수 밖에 없다는 지적도 내부에서 나온다.
서구 교통지도과는 총 39명이 근무하고 있는데 이 중 15명 만이 공무원 신분이다. 나머지 24명은 공무직 채용 직원이다.
구청 내부에선 교통지도과가 일선 민원에 대응해야 하고, 업무량이 과중하다는 인식이 강해 기피부서로 꼽힌다. 행정사무나 전산에 대한 이해가 높은 숙련 공무원보다는 대부분 신규 임용 공무원들로 자리를 채우는 실정이다.
현실적으로 현장 단속 등의 실무는 공무직 직원에게 맡으면서 역할과 비중이 커졌지만, 이들에 대한 내부 관리·감독은 허술해질 수 밖에 없다.
이처럼 허술한 전산 시스템과 안일한 내부 조직 관리·감독 속에서 정상적인 과태료 처분으로 들어왔어야 할 세외 수입이 누락됐다.
무엇보다도 교통 지도·단속 행정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다.단속 실효성엔 구멍이 났고, 행정이 추구해야 할 형평성조차 잃었다.법적으로도 공용서류 등 무효 혐의에 해당돼 형사 처벌을 피하기 어렵다.
국무조정실 공직복무관리관실도 지난달 19일부터 불시 감사에 나섰다.
서구 관계자는 “주정차 단속 관련 전산시스템 상 단속 자료 삭제 권한이 무분별하게 부여돼 있었던 사실을 국무조정실 감사가 시작되고 나서야 알았다. 곧바로 전산시스템 상 삭제 권한을 제한했고 전 직원 교육도 마쳤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공무직 직원들의 관리·감독을 소홀히 한 것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라고 밝혔다.
한편, 지난 재작년부터 최근 3년간 서구 지역 불법주정차 단속 건수는 47만6000여 건으로 한해 평균 16만 건 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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