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H중학교 학생들에게 장휘국 교육감은 그렇게 통지한 꼴이다.
너희는 배이상헌에게 도덕을 배운 것이 아니다. 너희는 정서학대를 당한 것이다-라고. 그래 그렇겠네. 내가 했던 세월호수업도, 나의 5.18수업도 모두 정서학대였네.
서울의 도덕교사 진영효 선생은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단원고 학생들이 카톡으로 마지막 인사를 남기는 영상을 수업자료로 활용했다고 했다. 어느 학생이 정말로 심하게 충격을 먹고 집에 가서도 밥을 먹지 못하자 학부모가 서울시교육청에 신고를 했고 그것 때문에 장학사가 학교를 방문했었다고 한다. 서울 경기에는 심심치 않게 그런 상황들이 있다고 한다.
대중이 넘실대는 학교교실엔 우리 사회 정치적 프리즘만큼 다양한 학생들이 있다. 신실한 신앙인도, 아카데믹 학구파도, 오로지 점수만 계산하며 특목고 자사고 전형에 유불리만 계산하는 학생도, 그냥그냥 성실히 원만히 하루를 마치고 귀가하는 것만 신경쓰는 학생들까지, 그 모두가 다 있는 것이 교실이다.
교단에서 사노라면 교사의 수업이 모든 학생들에게 박수 받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불편하다고, 짜증난다고 하는 학생들도 있고, 혹시는 학생들이 교사를 공격할 수도 있다. 그걸 가지고 학생들을 잘못했다며 성토할 일은 결코 아니다. 사실이든 오해든 어떻든 학생들의 의사표현이고 그 나름의 절실함이 있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물론 교사의 수업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거짓을 꾸며 공격하는 것까지 허용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학생이 불편했다는 수업을 ‘아동정서학대’라고 법률조항을 갖다 붙이고 그 어떤 확인절차도 없이 즉시 경찰서에 수사의뢰 공문을 보내는 광주시교육청의 징계행정은 정말이지 아동정서학대일 수 있다.
그렇게 일방의 말만 맹신하는 교육청에 의해서 자신의 선생님이 너무도 간단히 수업을 박탈당하고 교실에서 쫒겨 나는 것을 지켜보는 다수학생들은 ‘이게 뭔 일?’, 참으로 황당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교장,교감,담임교사가 이 사건에 대해 일언반구 언급하지 말라며 주의를 주고 경고를 주는 모습은 황당함 그 이상의 불편함으로 발전할지 모른다.
한 교실 안에서 신고하고 설문응답 했으리라 추정되는 친구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불편한 관계가 감당 못할 갈등으로 발전할까봐 이를 예방하고자 조심히 단속하는 것이지만, 한편으론 그 어떤 의사표현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학생들의 처지는 또 다른 무력감과 뒤틀린 정의의 민낯을 보는 고통을 느끼고 있지않을까?
졸업할 때까지, 아니 졸업 후에도 오래오래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 경험이 될지도 모른다. 그런 학생들의 답답하고 아픈 마음을 떠올리면 나에게 주어진 어떠한 억울함 그 이상으로 가슴이 아프고 우울해진다.
나의 수업을 ‘아동정서학대’라고 이름붙인 장휘국 교육감과 시교육청의 감사관, 그리고 성인식개선팀 장학사를 비롯한 여러 관련자들이 H중의 학생들과 지역의 교사들에게 끼친 횡포와 학대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기는 하는 걸까?
장휘국교육감은 사건 발생 후 10개월이 되어가는 지금까지 그 어떤 해명도 제대로 내놓지 않은 채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단지 자신의 정치적 탈출구만 탐색하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그에겐 지역의 주류들이 자신 편을 들어줄 것이라는 정치공학적 판단만 소중할지도 모른다. 그가 이제 와서 교사들의 마음과 학생들의 마음을 들여다 본다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긴 시간이 흐른 것이다.
그런 점에서 광주지역의 주류들이 이 사건을 외면하고 방관하며 권력의 목소리만 듣고 있는 것은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장휘국의 튼튼한 배후가 되면서 광주교육을 더욱 혼란에 빠트리고 있다는 것을 정말 모르는 것일까?
교육청과 여성단체가 작년 9월에 추진했던 수차례의 토론 출연을 거부한 것도 나와 함께하는 목소리들이 무대 위에 출현하여 지역사회의 다수 관객들에게 노출되는 것을 막아보려는 권력자들의 파시즘적 사고처럼 느껴진다. 당당히 진실을 다투는 것보다는 교육청과 교육감을 규탄하는 목소리들을 감추고, 학생의 목소리도 감추면서 말이다.
내 심정은 이해하지만 내가 너무 극단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고? 그래 이 모든 판단들을 공감하고 동조하기에는 그 무게가 여러분에게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를 사법기관에 수사의뢰한 지도 이제 300일이 넘어가고 10개월째인데, 교육감이 굳이 나와 대면하지 않더라도 사실과 진실을 파악하기까지는 시간이 넘치고 넘칠 정도임은 분명하지 않는가? 권력의 논리를 판단하는 것에 시간의 길이는 매우 유용하다.
아예 고개를 외면하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나에게 꾹 참으라면서 안타깝게 9개월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내가 지금 얼마나 차분하고 냉정하게 말하는지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수업을 아동정서학대라고 규정하는 것은 엄청난 넌센스이다.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돌이킬 수 없는 사고를 저지르는 것인가? 자신의 잘못을 감추고자 결국 동생 아벨을 죽이기까지 하는 카인의 황량한 마음이 머리를 스친다.
정의는 제 자리를 찾아야 한다. 인간의 어리석음을 아파하는 신의 은혜는 더욱 크게 역사하실 것이다. 나 역시 거리를 두며 피했지만 긴 세월 돌이켜 거듭 확인하는 신의 섭리였다. 샬롬, 평화가 있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