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좋은 게 선생입니다. 나이가 더 들어 아이들과 잘 어울릴 수 있을까 걱정이지만 또 한편으론 설렘니다”
광주시교육청의 ‘혁신 아이콘’으로 불리며 교원의 최고위층까지 올랐던 박재성(62) 교육국장이 일선 학교 평교사로 복귀한다.
교육국장이 평교사로 발령나는 것은 광주시교육청 설립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올해 8월 말 정년인 박 국장은 교육국장으로 재직하다 퇴직 할 수도 있지만, 평소 소신대로 3월1일자 인사발령에 따라 전남여고에서 중국어를 가르친다.
박 국장에게 ‘교편을 잡는다’는 의미는 그가 37년 동안 학교현장 민주화와 혁신을 추구해온 교육운동의 철학과 맥을 함께 한다.
박 국장은 1982년 광주 대동고에서 첫 교편을 잡은 후 1986년 교육민주화 선언에 참여한 뒤 9달 동안 사표를 강요당했다. 학교 측이 업무 책상까지 빼앗아가는 모욕감을 감내하면서도 그는 끝내 교편을 놓지 않았다.
이후 1989년 5월 전교조 결성에 참여했다가 두 달 뒤 해직됐다. 본격적인 ‘풍찬노숙’ 속에서도 그는 전교조 홍보부장과 대변인, 정책실장, 사무처장, 지회장, 지부장 등 온갖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참교육과 학교민주화를 실천하겠다는 학생, 자신, 동료들과의 약속을 지켜야 했기 때문이다.
바람이 불면 구름이 걷히듯, 군인 출신 정부가 물러나고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박 국장은 1994년 광주여고로 복직했다.
교육운동을 하면서 장휘국 광주시교육감과 맺은 인연은 평교사인 그를 다시 교육혁신 전면에 내세웠다.
2010년 장 교육감이 당선되자 취임준비위원과, 광주교육혁신추진단장을 거쳐 이듬해 3월 정책기획관으로 본격적인 교육관료 생활을 시작했다.
그의 개혁 드라이브는 거침 없이 학교에서 촌지문화를 없앴고 수십년간 쌓여있던 관료문화를 하나 둘 바꿔나갔다. ‘코드인사’라는 내부 반발도 있었지만 개혁의 속도는 가속됐다.
2년 후 두암중학교 평교사로 복귀했던 그는 장 교육감이 재선에 성공하면서 2014년 7월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 사무국장에 임명됐다.
보수정권을 상대로 누리과정 예산 투쟁과 역사교과서 철폐 등 대정부 투쟁을 이어가다 2016년 3월 광주시교육청 교육국장으로 승진했다. 그해 겨울 그는 촛불혁명을 맞이했다.
박 국장은 “더불어 살아가는 정의로운 민주시민을 육성하는 교육이 학교현장에서 뿌리내리도록 하는 것이 참교육이다”며 “우리나라가 5·18민주화운동 이전과 이후가 다르 듯, 세월호 이후 교육계는 안전은 기본이고 학생들이 자기 삶의 주인으로 거듭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평생 평교사로 퇴직하는 것을 꿈꿔왔다”며 “학교로 돌아가 아이들과 소통할 날을 생각하니 조금은 두렵기도 하다”며 엷은 미소로 대답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