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고·자율형사립고(자사고)·국제고가 사실상 폐지 수순을 밟으면서 특목고 진학 수요가 과학고나 영재고로 쏠릴 전망이다.
교육부는 신입생을 우선 선발해온 외고·자사고·국제고가 내년 12월부터 일반고와 동시에 학생을 선발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긴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을 2일 입법예고 했다. 정부가 외고·자사고·국제고 폐지의 첫 발을 뗀 것이다.
지금까지 외고와 자사고, 국제고는 일반고보다 한달 가량 앞서 신입생을 선발하면서 특목고로서 지위를 누려왔다. 중학교 성적이 우수한 학생을 선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 학교가 일반고와 고입을 동시에 치르게 되면 결국 일반고로 전환하는 수순을 밟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지금처럼 우수한 학생을 독식할 수 없게 되면 ‘입시 명문고’라는 존립 기반이 흔들릴 수 있고 특목고의 정체성이 약화될 수 있다는 이유다.
정부도 자사고, 외고, 국제고의 일반고 전환에 힘을 싣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과도한 입시경쟁과 고교서열화를 완화하고 고교교육 정상화를 위해 자사고와 외고, 국제고를 일반고로 전환하겠다는 대선 공약을 내걸었다.
교육부는 자사고와 외고, 국제고를 단계적으로 일반고로 전환한다는 방침이다. 일반고 전환 희망학교에 대해서는 행정적·재정적 지원 방안도 마련하고 자사고·외고·국제고의 일반고 전환 등 고교체제 개편 방안을 국가교육회의 안건으로 논의할 예정이다.
자사고·외고·국제고의 일반고 전환에 속도가 붙으면 학생 우선 선발권이 유지되는 과학고나 영재고로 우수 학생들이 몰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안상진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대안연구소 소장은 “문과 성향의 학생들이 외고와 국제고를 지원하는 경향이 많아 이공계 계통의 과학고나 영재고는 맞지 않을 수 있는 측면은 있지만 학생과 학부모들이 과학고나 영재고를 ‘무풍지대’라고 착각할 수 있고 정부도 (과학고와 영재고를) 다른 특목고와 다른 시선으로 보고 있어 주가가 더 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교육부는 과학고와 영재고는 졸업생 대다수가 이공계로 진학하는 등 이공계 인재 양성이라는 설립 취지대로 운영되고 있는 반면 외고·자사고 등은 설립 취지에 부합하는 인재양성 보다 입시 위주의 교육에 치중해 입반고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고 있다.
서울의 한 입시학원 원장은 “수능 응시 인원 등을 기준으로 한해 평균 전국 자사고 입학생 1만6000명 가량 가운데 이과 성향 학생은 60~70% 정도로 파악된다”며 “자사고가 폐지되면 이과 성향의 학생들은 과학고나 영재학교로 몰릴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과고·영재고 쏠림현상으로 사교육 수요가 수학, 과학 등으로 옮겨가는 ‘풍선효과’를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과고와 영재고를 희망하는 학생들과 이들 학교에 진학한 학생들의 사교육비 지출 비중이 적지 않아서다.
지난달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사교육을 받는다고 응답한 중3 4811명과 고1 7829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사교육비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과고·영재고 희망자중 월 평균 사교육비 100만원 이상 지출 비율은 31.6%로 광역단위 자사고(진학 희망자의 43%), 전국단위 자사고(희망자의 40.5%)를 뒤따랐다.
특히 고교 진학 후 월 사교육비가 100만원 이상이라고 답한 학생 비중이 가장 높은 고교유형은 과고·영재고(37.7%)였다. 이어 광역단위 자사고(35.8%), 전국단위 자사고(22.9%), 외고·국제고(16.8%)가 그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