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부터 교육감이 자체적으로 쓸 수 있는 예산은 늘리고 국가시책사업은 대폭 축소하는 등 교육권한을 교육청과 일선학교에 넘기는 첫 발을 내딛었다.
교육부와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는 28일 오후 서울 강북구 삼각산고등학교에서 ‘제1회 교육자치정책협의회’를 열어 이런 내용이 담긴 ‘교육자치 및 학교자율화 추진계획’ 등의 안건을 상정하고 협의했다.
교육자치정책협의회는 교육부, 시도 교육청, 교육전문가와 학교현장 대표가 한 자리에 모여 교육자치 강화 및 학교 자율화와 관련된 주요 안건들을 심의·의결하는 교육 분야 협치(協治)기구다.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이 공동의장을 맡고 5개 시·도교육감, 민간위원 7명 등 총 14명이 참여한다.
이날 협의 테이블에 오른 ‘교육자치 및 학교자율화 추진계획’ 중 교육부는 3대 중점과제로 ▲초중등 재정지원 사업 개편 ▲학교운영 자율화 ▲시·도교육청 운영·평가 자율화 등을 즉시 이행하겠다고 밝혔다.
우선 교육부는 내년부터 초·중등 국가시책사업 운영 예산인 ‘특별교부금’ 비율을 전체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의 4%(1조6000억원)에서 3%(1조2000억원)로 축소하고 대신 교육감 재량으로 활용할 수 있는 보통교부금 비율을 늘리기로 했다.
해마다 교육부가 시·도교육청에 지급해 온 특별교부금은 책정 기준 등이 일방적인 데다, 교육청 간 줄 세우기를 통해 교육자치를 훼손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234개 사업 1000여개 내용으로 지나치게 세분화돼 있는 국가시책사업도 국정과제를 중심 5개 정책 19개 사업으로 대폭 줄어든다. 지원방식은 그동안의 ‘하향식’에서 벗어나 시·도교육청과 일선학교의 수요를 교육부가 반영하는 ‘상향식’으로 개편된다. 3월 개학 후 수시로 교부돼 교육현장에 혼란과 부담을 가중시켜왔다는 지적을 고려해 전년도 10월 중 조기 배정하기로 했다.
학교의 학사운영 자율성도 강화된다.
각종 지침·계획은 신학년 교육계획 수립 전인 11월 말까지 필요한 공문만 안내하고 연구학교 규모를 줄이고 선정 시기도 앞당겨 학교의 부담을 줄인다.
대신 매년 2월을 학교가 신학기 준비기간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교장 인사발령 시기를 2월로 앞당기고, 학년도 개시일을 3월1일로 고정시키지 않고 교육감의 승인을 얻어 학교가 자율적으로 변경할 수 있도록 했다.
시·도교육청 조직과 이사 운영 및 평가에 자율성을 확대하기 위해 교육부가 행사하던 교육청 4급 이상 정원 승인권을 폐지한다. 시·도교육청 자체평가제를 도입하고 정량화·세분화돼 있던 평가지표를 축소하는 동시에 지방교육재정분석과 재정평가를 일원화하는 등 규제개혁에 나선다.
이외에 교육부는 교육현장에 부담으로 작용하는 규제적 지침 74개는 내년 상반기까지 우선 정비하고 법령 정비 등 국회와의 협조가 필요한 사항들은 세부 이행계획을 마련해 내년 하반기까지 마친다는 계획이다.
첫 교육자치정책협의회는 협의회 성격을 명확히 하고 교육부가 ‘교육 적폐 청산’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애초 계획보다 1시간 가량 추가 진행됐다.
김승환 전라북도교육감은 “협의회 성격이 실무적이고 기술적인 것을 다루는 기구인지 교육자치의 본질과 발전을 다루는 기구인지 나오지 않았다”며 “성격과 비중을 정확히 구분하지 않으면 협의회에 계속 나와야 하는지 헷갈린다”고 지적했다.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은 “지난 정권을 돌아오면서 국가가 교육에 대해 저지른 과오들과 잘못된 정책들에 의해 교육현장이 왜곡되고 어려움을 당했다”며 “성찰 없이 미래를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 부분은 짚고 넘어가는 것이 옳다”고 했다.
이에대해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교육 민주주의를 어떻게 학교현장을 중심으로 구현해 나갈 것인가가 최대 고민사항이고 그것을 풀어내고자 하는 게 협의회”라며 “(재정·인사·조직 등) 세 가지는 학교현장과 시·도교육청을 힘들게 하는 것을 예시한 것이라고 봐주면 되겠다”고 답했다. 다만 지난 정권 당시 교육 적폐와 관련해선 “이 자리에서 표명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즉답을 피했다.
이 같은 논의를 거쳐 교육자치정책협의회는 협의회 목적 가운데 ‘학교자율화’라는 문구를 ‘학교민주주의’로 대체하고 실무협의회에 공무원뿐 아니라 시·도교육감이 추천하는 교사 등 현장인사가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