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가해 학생들이 피해학생과 분리되지 않은 채 같은 학교나 학급에 잔류하는 탓에 피해학생의 결석일수가 늘고 학교를 그만두는 현실이 이어지고 있어 추가 대책이 필요하다는 피해학생 학부모들의 호소가 나왔다.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학폭피해가족협) 소속 학부모 30여명은 9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앞에서 집회를 열고 피해학생 회복·치유를 지원하는 전담기구 확대를 요구했다.
학부모들은 ▲피해자 전담기관 교육부 직접운영 및 지역별로 설치 ▲피해자와 가해자 분리된 공간에서 회복 지원 ▲학폭 피해자 치유 전문성 갖춘 민간시설에 위탁 운영 등을 요구했다.
교육부와 이화여대 학교폭력예방연구소가 발행한 ‘학교폭력 사안처리 가이드북’ 2020년 개정판에 따르면 학교폭력 피해학생 전담지원기관은 2019년 12월 기준으로 전국에 49개소가 있다.그러나 가해학생 특별교육기관은 올해 5월 기준 5189개소로 106배에 달한다.
학폭피해가족협은 “이 중 피해자만 전담으로 지원하는 기관은 극히 드물고, 전국단위 기숙형 위탁시설인 피해자 전담기관은 해맑음센터(대전)가 유일한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학교폭력 피해 응답자는 2017년 3만7000명에서 재작년 5만명, 2019년 6만명으로 늘어나고 있으며 재발 건수도 증가하는 추세다.
학폭피해가족협에 따르면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교육부에서 제출받은 2016~ 재작년 학교폭력 가해자 재발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6년 2108건이었던 가해학생 재발 건수는 2017년 3250건, 재작년 3827건으로 증가했다.
일각에서는 가해학생 97% 이상 특별교육을 이수하는데도 재발 사례가 늘고 있어 교육이 형식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 바 있다.
교육부는 피해학생 전담 지원기관을 확대하고 내실화한다는 내용의 제4차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 기본계획(2020~2024)을 발표했다. 그러나 학부모들은 부족하다고 입을 모았다.
학폭피해가족협은 “올해 초 학교장 자체해결제 도입 등의 내용이 담긴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개정 과정에서 피해 학부모들의 의을 수렴할 때만 해도 많은 기대를 했다”면서도 “막상 ‘통학형 피해자 전담기관’ 지원계획을 보고 교육관계자들의 안일한 문제 인식에 기대가 실망으로 변했다”고 비판했다.
피해학생의 학부모들은 학교와 교육청을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가해학생 출석 정지 또는 학급교체가 받아들여지지 않아 피해학생이 괴로운 학교생활을 해야 하는 것은 물론 정밀 상담실과 보건실, Wee센터도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평이 주를 이룬다.
학폭 피해자 어머니 김정희(가명)씨는 “아이가 학교폭력 피해를 당하며 결국 학교로 돌아가지 못해 자퇴를 하게 됐다”며 “교육부는 피해 가족들의 외침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학부모들은 교육부가 추진 중인 주간보호형 피해학생 전담기관에 대해서도 ‘탁상행정의 산물’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일반 중학교 별관, 그 위층에 가해성향 학생들이 이용하는 Wee센터가 설립되고 있다”며 “언제든 가해자와 마주칠 수 있는 환경에서 피해학생 지원이 가능할지 의구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대구시교육청에서 피해전담기관을 설립하고 수요가 적을 경우 가해학생 교육기관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한 것은 사실이나 교육부 차원에서 우려를 전하고 전담기관을 유지해달라고 요청했다”며 “9월 말 대구시교육청에서도 Wee센터를 설립하지 않기로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학폭 피해 학부모들은 현행 피해학생 치유 지원 구조를 근본적으로 변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폭피해가족협은 “당국은 기관 수만 조금씩 늘리는 정도의 대책을 최선으로 여기고 있으며 그것도 대부분 Wee센터 내부에서 사업을 확대하는 개념”이라며 “피해학생 지원에 정작 피해학생은 없는 셈”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시도교육청 편입 방식이 아니라 교육부가 직영 운영하는 주요 거점에 우선 운영할 필요가 있다”며 “현재 해맑음센터처럼 민간 위탁 교육 이후 복교 또는 공교육에 연착륙하는 형태가 효과적”이라고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