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는 마스크와 책상 가림막 외에도 감독관을 위한 의자가 처음으로 등장했다. 매년 길게는 9시간 서 있어야 하는 감독관을 위해 의자를 배치해야 한다는 일선 교사들의 요구가 드디어 받아들여진 것이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는 교육당국 지침과 감독 현장 특성상 의자에 앉아 보지도 못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번 수능을 감독한 강서구 한 중학교 A(30대·남) 교사는 6일 뉴시스와의 통화에서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 지침상 감독관 2명이 교대로 의자에 앉도록 했다”면서 “교대로 앉으려면 정 감독관이 교실 뒤로 와야 하고, 부 감독관은 앞으로 가야 하는데 그렇게 왔다갔다 할 수 없다. 뒷자리에선 앞자리 감독관이 서 있는 게 보여서 앉기엔 마음이 쓰였다”고 설명했다.
통상 수능 감독관은 한 시험실당 2명이 배치되지만 4교시 한국사 및 탐구영역은 3명이 배치된다. 교탁 앞에는 정 감독관, 뒤에는 부 감독관이 자리한다.
평가원의 ‘수능 감독관 업무 안내’ 지침서를 보면 감독관 의자는 시험실 뒤쪽에 2개가 배치됐다. 지침에는 “감독관은 시험 감독에 지장이 없는 범위 내에서 시험실에 비치된 의자에 잠시 앉아 감독할 수 있다”며 “나머지 감독관 1명은 시험실 앞쪽 중앙에 서서 감독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또한 “부정행위 또는 민원 발생 소지가 없도록 교대로 (의자를) 이용한다”고, “4교시의 경우 2명의 감독관이 동시에 앉아 있지 않도록 한다”고 명시했다.
지침으로만 보면 정 감독관이 힘들 때 뒷자리로 가서 의자에 앉고, 부 감독관이 앞자리로 가서 감독을 하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일선 교사들은 수능이 극도로 민감한 상태에서 치러지는 만큼 수능 수험생들에게 어떤 악영향을 끼칠 지 몰라 섣불리 움직일 수 없다고 지적한다.
자칫 잘못하면 수시로 감독관들이 앞뒤로 움직인 점이 감독관의 부주의로 시험을 망쳤다는 수험생과 학부모의 민원으로 접수될 수 있다는 부담도 따른다.
수능 감독관을 맡았던 B 교사는 “의자가 없는 것보다는 나았지만 감독들끼리 서로 미안해서 앉지 못했다”며 “감독 업무에 오히려 도움이 안돼 기피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서울교사노동조합 박근병 위원장은 “교육 당국에서도 의자를 처음 배치하다보니 민원이 발생할까봐 지침을 엄격하게 마련했던 것 같다”며 현실에 맞게 지침 수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교원단체에서는 애초에 높이를 조절해 교탁이 있어도 수험생들을 감독할 수 있는 키높이 의자가 아니라 시험장 학교에 남는 일반 의자가 배치됐다는 점도 꼬집었다.
A 교사는 “그 학교에 있는 남는 의자를 배치한 것이지, 감독관을 위한 새로운 의자를 만들어서 제공한 게 아니었다”며 “교탁 앞에는 높은 의자를 배치해야 했다”고 생각을 밝혔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정현진 대변인은 “당국에 요구했던 것은 앉아서도 감독에 지장이 없는 키높이 의자였다”며 “학교에 있는 의자를 제공해 1명씩 돌아가며 앉도록 한 것은 일보 진전이긴 하지만 교사들의 바람과는 맞지 않았던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