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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처 피어보지도 못하고 스러진’ 5·18 학생열사들

 

5·18민주화운동 제38주년을 앞두고 1980년 항쟁 당시 불의에 맞서 분연히 떨치고 일어났던 학생열사들의 희생이 재조명되고 있다.

 

16일 광주시교육청에 따르면 5·18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가 희생된 광주지역 학생열사는 16개 학교 18명이다.

 

이 중 계엄군이 금남로에서 애국가를 부르는 시민들에게 집단발포한 21일 다수의 학생희생자가 나왔다.

 

무등중학교 3학년 김완봉, 전남여상(당시 춘태여상) 3학년 박금희, 숭의중학교 2학년 박창권, 대동고 3학년 전영진, 동성고(당시 광주상고) 2학년 이성귀, 송원고 2학년 김기운 학생이다. 모두 사망원인은 총상이다.

 

박금희 학생은 이날 희생자가 많아 병원에서 피가 부족하다는 소식을 듣고 오후 5시 기독병원에서 헌혈을 하고 나오다가 계엄군 헬기에서 쏜 총을 맞고 숨졌다.

 

송원고 김기운 학생은 22년 동안 무명열사로 광주시립공원 묘지 3묘역에 묻혀있다가 2001년 10월 유전자 감식으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시위를 이어가던 숭의고 양창근 학생은 22일 공용버스터미널 앞에서 계엄군이 쏜 총에 목숨을 잃었다.

 

23일에는 시위에 나섰다가 희생된 어른들을 돕던 송원여상 3학년 박현숙 학생과 광주일고 부설 방송통신고 3학년 황호걸 학생이 지원동 주남마을에서 각각 머리와 복부 등에 총상을 입고 숨졌다.

 

두 학생은 전남도청 지하실에서 시신에 묻은 피와 오물을 닦다 관이 부족해 전남 화순으로 관을 구하러 가던 중 매복해 있던 군인들의 집중 사격을 받았다.

 

황호걸 학생은 구한말 의병대장 황병학 선생의 손자다. 박현숙 학생은 당시 집에 쌀이 떨어져 동생에게 밥을 해주지 못해 안쓰러워했다는 기록이 있다.

 

시민군에 가담했던 조대부고 3학년 김부열 학생은 목이 잘리는 등 시신이 처참하게 훼손된 상태로 발견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부열 학생을 폭도로 분류해 희생자 유가족에게 지급했던 위로금도 지급하지 않았다.

 

27일 최후 항쟁의 날 전남도청을 사수하던 동성고 1학년 문재학 학생은 좌복부 관통상을 입고 사망했다. 도청에서 마지막까지 부상자와 시신들을 돌보던 조대부고 3학년 박성용, 동성고 1학년 안종필 학생도 계엄군의 총탄에 쓰러졌다.

 

광주시교육청 관계자는 “미성년자인 학생들이 계엄군의 만행을 보고 시위에 참여했다가 미처 피어보지도 못하고 희생된 기록을 보니 숙연하다”며 “학생열사의 모교에서는 자체 계획에 따라 추모행사를 개최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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