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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깎이 어르신들의 ‘슬기로운 초등학교 생활’

왼쪽부터 박향님, 장화녀, 이선숙, 김순덕 어르신과 김민건 학생.

 

영광 군서초등학교 4학년 1반 교실. 이곳은 책상과 의자, 책꽂이 등 다양한 교구 교재 외에 여느 교실과 다르게 시골마당에서나 볼 수 있는 널찍한 평상 위에 온수메트가 깔려있는가 하면 고가의 척추마사지기인 의료기기 등이 갖춰져 있다.

 

이유는 이 교실의 주인공 대부분이 70세가 넘는 할머니 초등학생이기 때문이다. 주인공들을 소개하자면 왕언니인 김순덕 할머니를 비롯해 장화녀(77세), 박향님(74세), 이선숙(73세) 그리고 손자뻘인 김민건(11세) 학생이다.

 

4명의 할머니는 어르신의 문해력을 해결하기 위해 가끔 열리는 한글교실학생이 아닌 정식적인 입학을 했다. 교육청의 정식적인 취학통지서를 받고 지난 2019년 3월 군서초등학교 1학년 신입생으로 입학한 것이다.

 

평생 학교가는 게 소원이었던 김순덕 어르신, 하지만 본인 맘대로 입학을 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중국 유학중인 아들의 “엄마 학교 가야죠”란 물음에 “이 나이에 어떻게 가야”라며 수년째 소원을 이루지 못하며 마음만 졸였다.

 

그러던 중 “엄마가 건강만 하면 학교에서 얼마든지 받아준다고 했으니까 가고 싶으면 가세요”라는 아들의 권유에 희망을 가졌다. 허나 반가운 말이었지만 선뜻 혼자는 학교에 오지 못했다. 아들이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서야 함께 입학을 하게 됐다.

 

입학식 당일, 등교도 쉽지 않았다. 가방을 메고 학교에 오는 게 평생 소원이었지만 막상 교문을 들어서려니 너무 창피했기 때문이다.

 

김 할머니는 “아이들 키운 뒤, 할머니가 돼 학교에 오니 사람들이 뒤통수만 보는 것 같아 사람들을 잘 쳐다보지도 못할 정도였다”며 “하지만 지금은 정말 재미있다”고 말했다.

 

이선숙 할머니도 자음이 뭔지 모음이 뭔지 글씨도 모르고 진짜 아무것도 몰랐다. 항상 글을 모르니 맘속으로 답답해하며 살아왔다. 그러던 중 학교에서 할머니들을 입학시켜 공부를 가르쳐준다는 소식에 남편에게 “나 배우고 싶으니 학교 좀 보내달라”고 부탁을 해야했다. 이런 이 할머니의 부탁에 남편은 흔쾌히 응했다.

 

할머니 초등학생들의 가방은 입학식 때 임봉애 교장이 선물해줬다. 색상도 각각 알록달록한 예쁜가방에 인형 등의 액세서리까지 달아 여느 초등학생 가방 못지않다.

 

할머니들은 “학용품에 칫솔까지 학교에서 모두 사주서 우리는 몸만 다니면 되니 너무 고맙다”며 “학교에서 이렇게 까지 배려해주는데 우리는 나이가 먹어 공부를 잘 하지 못해 미안할 따름이다”고 입을 모았다.

 

◆한글 배운지 2년 만에 시집 ‘가방을 지고’출간

어르신들의 배움에 대한 열정은 높았다. 2학년 과정을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각자가 그간 느껴왔던 유년시절, 학교생활 등을 시로 써내려갔다.

 

김순덕 어르신은 어릴 적 초가집에 살 당시 박이 지붕위에서 주렁주렁 매달리고 담장 밑에 예쁘게 핑 나팔꽃 등 유년시절 기억을 남겼다. 박향님 어르신은 학교 오늘 길에 우체국 옆에 꽃이 벙실벙실 피어있는 모습을 표현했다. 또 시를 쓰면서 돔보다 더 귀한 것을 깨달았다. 이선숙 어르신은 학교에서 한글을 한자씩 배워 집에서 농사일 하면서 한지씩 써내려갔다.

 

그 결과 다음해 1월 92여 편이 담긴 ‘가방을 지고’란 시집이 출간됐다. 군서초는 어르신들의 시집 발간을 기념하는 시낭송회를 열었다. 모든 재학생과 교직원 앞에서 지산의 시를 낭송해 어르신들은 비롯해 모든 참여자의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어르신들은 한결같은 걱정이 있다. 선생님이 늘 가르쳐주셔도 머릿속에 잘 담아지질 않는다는 것이다. 방금 알려준 내용도 잊어버리는 자신들이 답답하다는 것. 하지만 학교에 입학에 4년을 배우며 하나하나 알아갈 때를 제일 재미있어한다. 이제는 어디에서나 이것저것 글을 쓸 수 있는 마음이 홀가분하기 때문이다.

 

◆건강이 허락한다면 중학교 진학 도전도

어르신들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대부분 “초등학교를 건강하게 졸업만해도 만족하고 기쁘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김순덕 할머니는 중학교에 입하하는 것이 꿈이다. 김 할머니는 “나는 중학교에 가고 싶어요, 그런데 나이가 드니 몸이 밑으로 쳐져 힘들다”며 “건강이 허락되면 중학교에 가고 싶은데 받아 주려나 모르겠다”고 말했다.

 

올해 지난해보다 더 많은 면적인 500평에 고추를 심어 농사일이 더 힘들어졌다. 김 할머니는 “일할사람도 구할 수 없어 혼자 하니 더 힘들다”고 푸념했다.

 

이렇듯 어르신들의 건강은 하루가 다르다. 첫 입학당시 6명이 입학했지만 2명의 어르신이 건강이 좋지 않아 학업을 포기해야만 했다.

 

하지만 어르신들은 건강만 허락한다면 배움을 멈추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를 보였다. 우유배급 당번을 정해 각자의 할 일도 챙긴다. 또한 군서초등학교 고학년으로 모범을 보이겠다며 환하게 웃었다.

 

한편 군서초등학교는 2년째 혁신학교를 운영 중이며 모든 교육활동을 학생들의 행복할 수 있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여기에 학부모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학교 활동 참여를 유도하는 등 학부모회를 활성화시고 있다. /박재범 기자

 

<인터뷰>정종일 담임교사

4년간 어르신 배움 돌봐온 ‘조력자’

 

◆할머니반 담임 수락이 쉽지 않았을 텐데.

전 학교에서 군서초로 발령받을 때 할머니들이 계신지 모르고 왔다.

할머니 반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았을 때 좀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생각을 해보니 시골에서 할머니랑 함께 살았던 기억이 있어서 쉽게 제안에 응했다.

 

학생의 진급시 담임이 바뀌는데 반의 특성상 4년간 담임을 맡아왔다. 하지만 교사들이 한 학교에 4년간 근무한 뒤 다른 곳으로 발령을 받아야해 올해가 아마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싶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아무것도 모르는 백지상태로 입학하셔서 1년 배우고 2년차에 뭔가 뜻있는 일을 해보자는 취지고 시집을 썼다. 시집을 낸 뒤 강당에 전교생과 교사가 모두 모인 자리에서 할머니들이 시낭송을 했다. 모두가 가슴 뭉클해하고 벅차했다. 저 또한 눈물이 맺힐 정도였다.

 

이분들이 항상 말했듯이 돌아서면 잊어버리는데도 불구하고 배우고자 하는 열정이 넘친다. 그 과정에서 한자 두자 익히면서 하루 이틀 지나서 2학년 말에 시까지 썼으니 말이다.

 

마음 아픈 일도 있다. 처음 함께 입학했던 두 어르신이 건강이 악화돼 2학년 때와 올해 7월 학업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르신들께 항상 당부하는 말이 있다. “첫째도 둘째도 건강을 챙겨야 한다”는 것이다. “어르신들이 건강하셔야 원하는 초등학교 졸업도 할 수 있고 중학교에 진학도 할 수 있다”고 항상 말씀 드린다. 하지만 다들 일에 대한 욕심이 많으셔서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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