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연령을 만19세에서 만18세로 하향 조정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면서 당장 내년 4월 치러지는 국회의원 총선거에 고3 학생들이 선거권을 갖게 되자 진보교육계와 보수교육계 반응이 극명하게 나뉘었다.
청소년단체와 진보교육계에서는 “역사적인 날”이라며 환영의 뜻을 표한 반면 보수성향의 교육단체는 “학교가 정치판이 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이날 보수성향의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는 “고등학생의 정당 가입이나 정치활동이 허용된다면 특정 정당이나 후보를 지지 또는 반대할 수 있게 돼 면학분위기가 깨지고 학생이 선거법을 위반하게 될 수도 있다”며 “학교 혼란을 예방하기 위해 학생 지도 및 정치활동에 대한 세심한 지침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총은 특히 선거 연령이 만18세로 낮춰짐에 따라 고3에 해당되는 학생들이 성인과 청소년 경계에서 기존 민법이나 청소년보호법 사이 혼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교총 조성철 대변인은 “고3이 선거권을 가진 성인이라면 당장 내년 1~2월이면 고2 학생에게도 술·담배가 허용되고 친권의 보호도 받지 못한다”고 우려했다.
이에 대해 청소년단체와 진보교육계는 ‘기우’ 또는 ‘과도한 우려’라고 표하며 선거법 개정에 환영의 뜻을 표했다.
선거연령 하한을 주장해온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미지 집행위원장은 “국민이라면 누구나 가져야 하는 권리이지만 청소년만 예외적으로 박탈됐던 것”이라며 “학교는 지금보다 더 정치적인 공간이 돼야 하며 가장 삶 가까운 곳에서 배우고 실천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민법·청소년보호법 등과의 충돌 가능성에 대해서도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공무원 시험 응시자격이나 결혼, 운전면허 자격 등 다양한 영역의 법률에서 ‘성인 기준’이 혼재돼 있다”며 “선거연령만 하향한다고 해서 법적 혼란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진보 성향의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정현진 대변인 역시 “민주 시민을 양성하는 것이 교육과정의 목표이며 민주시민교육정책과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도 사회적 논쟁 수업 등을 강조하고 있다”면서 “새롭게 바뀐 정책으로 혼란을 줄이기 위해 차분히 가이드라인을 만들면 되지, 청소년 자체를 여전히 ‘어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라고 보는 것은 세계 보편 기준에 맞지 않다”고 반박했다.
그는 스웨덴 출신의 10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와 34세의 나이에 핀란드 국정을 이끌게 된 산나 마린 신임 총리 를 언급하며 “한국 청소년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흐름이 있으며, 대통령 탄핵이나 촛불집회 등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정치영역이 널리 열려있다는 것을 직접 보고 자란 세대”라고 강조했다.
민주시민교육교원노동조합도 이날 환영 성명을 내고 “정치적 영역에서 많이 소외되어 있던 청소년들이 당당히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등 청소년 권익 향상에 크게 이바지할 것”이라며 “이번 선거연령 하향을 계기로 학교에서 정치 교육이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장 2020년부터 학교 교육에서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정치교육, 특히 선거 관련 교육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서울시교육청이 2020년 3~4월 초·중·고 40개교에서 실시하기로 한 모의선거교육이 다른 16개 시·도로 확산될 가능성이 커졌다.
서울시 모의선거교육 실무를 맡은 ‘징검다리교육공동체’는 다른 16개 시도교육청에도 모의선거교육을 제안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서울시교육청과 교사들은 최근 선거 및 사회적 현안을 교육할 때 교사 스스로 중립성과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는 7대 사회현안 교육원칙 초안을 만들었지만 우려는 여전하다.
자유한국당 홍일표 의원은 27일 학교에서 선거교육을 실시하고자 할 경우 해당 시·도 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에 신고하고 객관성과 중립성을 담보할 수 있도록 선관위 소속 선거교육 전문 공무원을 통해서 교육하도록 하고, 선거교육 담당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유지하지 않을 경우 벌칙을 부과하는 골자의 공직선거법 일부개정안을 대표발의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교육부 신두철 민주시민교육과장은 “이미 교육과정 내에서 선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학교 자율적으로 계기교육도 가능하다”면서 “선거교육 등을 위한 지침을 마련하기 위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협의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