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3년 박근혜 정부의 노골적인 방해를 극복하고 2019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를 유치했던 강운태 전 광주시장은 대회 개막을 10여일 앞두고 만감이 교차한다.
강 전 시장은 “광주의 적은 경쟁도시가 아닌 대한민국 정부였다”며 당시 수영대회 유치 과정의 험로와 뒷배경을 털어놨다. 또 세계수영대회 성공 개최로 ‘민주·인권도시 광주’가 ‘수영도시’, ‘관광도시’로 발돋움하기를 염원했다.
강 전 시장이 2일 뉴시스와의 전화인터뷰를 통해 밝힌 유치비화, ‘6년 만의 고백’이다.
지난 2013년 7월19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승전보를 올린 것은 치열한 전략으로 고비를 넘기며 천신만고 끝에 이뤄낸 결과였다. 강 전 시장은 당시 박용성 대한체육회 회장과 이기흥 대한수영연맹 회장, 국제수영연맹(FINA) 훌리오 마글리오네 회장의 도움이 컸다고 회고했다.
강 전 시장은 FINA에 수영대회 유치를 신청하기 전 먼저 국내에서 부산과 경쟁을 벌여야 했다. 본 경기를 치르기 전 ‘샅바싸움’ 성격이었다.
강 전 시장은 광주는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경기를 위해 국제수영장을 건립할 예정이어서 수영대회 여건이 좋고 시설비도 절감할 수 있다고 반박한 끝에 부산을 눌러앉혔다. 대한체육회와 수영연맹의 지원사격이 판세를 흔들었다.
국내 문제를 마무리하자 이번에는 아시아권 대표주자를 놓고 맞붙어야 했다. 일본 도쿄와 중국 베이징이 FINA에 의향서를 함께 제출한 것이다.
강 전 시장은 일본은 2022년 하계올림픽을 유치 중인데, 수영대회까지 하면 욕심이다는 논리로 일단 제동을 걸었다. 의향서를 철회하면 대한민국 IOC 위원 2명이 올림픽 유치전에서 도움을 주겠다는 당근책도 제시했다. 결국 일본은 의향서를 접고 광주 지지를 선언했다.
강 전 시장은 이미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고 판단하고 중국 설득에 나섰다. 중국은 수영대회를 이미 한 차례 개최했는데 광주에 양보해달라, ‘수영강국’인 중국이 광주에 밀려 떨어지면 창피하지 않겠나. 예상은 적중했고 중국도 의향서를 철회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최대 복병을 만났다.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줘도 모자랄 대한민국 정부가 광주를 노골적으로 방해했다.
대회 개최지 결정의 날인 2013년 7월19일 새벽. 박용성 회장과 함께 영어 브리핑 연습을 밤 늦게까지 하고 새벽 1시께 잠들었는데 곧바로 수행비서가 깨웠다.
“시장님 난리가 났습니다”
수행비서 손에는 국내 한 언론사의 기사가 들려있었다. 광주시가 수영대회 정부보증서를 위조했다는 내용이 1면에 대문짝만하게 실려있었다. 광주시가 유치에 성공해도 무효이고 강운태 시장은 귀국하면 수사를 받아야 한다는 내용도 있었다.
7시간 뒤면 브리핑인데, 어안이 벙벙했다. 대한민국 정부가 작심하고 광주시의 등에 비수를 꼽은 것으로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세계 메이져 스포츠대회라 경쟁 국가는 정부 수반까지 동행했는데 대한민국 정부는 정반대였다. 온갖 잡생각이 떠올랐지만 정신을 추려야 했다. 간절한 기도를 올리고 브리핑장으로 향했다.
그래도 희망은 있었다. 그동안 끈끈한 관계를 유지해 온 훌리오 마글리오네 FINA 회장이 힘을 실어줬다. 브리핑 후 대한민국 정부 입장에 대한 FINA 집행위원들의 질문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평소 온화하던 훌리오 회장이 “Any questions?(질문있습니까?)”라는 발언을 갑자기 소리지르듯이 던졌다. 집행위원들이 어리둥절한 모습을 보이자 그는 곧바로 “Finish(끝)’라며 회의를 마쳤다. 결국 광주는 대회를 유치했다.
기쁨과 환희의 순간도 잠시. 귀국한 강 전 시장을 기다리는 것은 검찰의 수사였다. 정부가 수영대회 유치위원회 관계자들에 대한 수사를 검찰에 의뢰했다.
정부와 손발을 맞춘 듯 검찰의 행동도 기민했다. 유치단이 승전보를 전한지 3일 만에 검찰은 관계자들을 줄소환하고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그 대상에는 유치위원회 사무실은 물론 김윤석 사무총장 관사와 강 전 시장의 집무실까지 포함됐다. 강 전 시장을 정면으로 겨냥한 수사였다.
강 전 시장을 먼지털 듯 했으나 결국 검찰은 유치위원회 사무총장과 실무자 2명을 기소하는 데 그쳤다. 대회 유치 성공을 위해 PDF파일인 정부보증서를 일부 수정했다가 다시 원본으로 교체한 것이 죄목이었다.
정부는 이미 3개월 전 감사를 통해 보증서 문제를 인지하고도 묵혀뒀다가 대회 유치국가 발표 당일 날 고춧가루 뿌리 듯 언론에 공개했다. 무엇보다 대회유치에 성공해 국위를 선양했는데도 정부가 오히려 국익에 반하는 행태를 보인 것이 쉽게 납득되지 않았다.
법조계 안팎에서도 행정징계 정도의 경미한 사안을 침소봉대해 국제스포츠계에서 국가의 위신을 떨어트리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FINA 측이 유치위원회 관계자들에 대한 선처를 구하는 공식서한을 재판부에 제출한 것도 사안의 경중을 가리는 데 한 몫을 했다.
결국 법원의 판단은 정부와 달랐다. 정부가 ‘국기문란’으로 사안의 엄중함을 부각시켰으나, 법원은 사실상 면죄부와 같은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다. 별다른 실익도 없는 사안에 정부가 호들갑을 떨었다는 비판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세간의 따가운 시선에도 정부의 집요한 괴롭힘은 지속됐다. 대회 개최를 위해서는 국비를 받아야 하는데 정부가 예산을 지원하지 않겠다고 어깃장을 놨다.
강 전 시장은 우회전략을 사용해 국회의원 발의로 국제경기대회 지원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여야 의원 154명이 개정안 공동발의에 서명했다. 여야의 입장이 첨예한 상황에서 강 전 시장이 의원 개개인에게 일일이 전화해 사안을 설명했다.
대한민국 정부와 맞서 천신만고 끝에 이뤄낸 결과였다.
강 전 시장은 “대회를 유치하고 예산지원 근거를 만드는 과정에서 박근혜정부의 노골적인 방해로 광주시 공직자와 시민들이 큰 상처를 입었으나 결국 극복했다”며 “이제는 수영대회를 성공개최하는 것 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대회 유산을 남기는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국제스포츠대회를 유치한 것은 민주·인권의 도시 광주에 체육·관광도시라는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서였다”며 “선수권대회는 물론 마스터즈대회까지 안전하게 마무리될 수 있도록 기원하겠다”고 전임 시장으로서 애정을 나타냈다.